지부 사무실에 들렀다 집에 오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집에 빨리 올 수 없나?'는 집사람의 전화를 받는 순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심각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지예의 눈물이 만든 것이었다.
간혹 밥상머리에서 짝지에 대한 불만은 이야기 들은 바가 있다. 학습준비물을 제대로 챙겨오지 않아 자기가 챙겨줘야 한다, 수업준비도 챙겨줘야 하고, 공부하는 것도 도와 줘야 한다 등등. "챙겨주지 말고 그냥 두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선생님이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러면 안된다는 대답이다.
지예가 옥현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다. 하루는 지예를 데리러 종일반에 갔더니 울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장애를 가진 친구를 선생님이 도와 주라고 해서 도와 주는데 친구가 지예의 말을 잘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다하다 지쳤는지 그냥 울고 있었다. 그 때 지예의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지금도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인 듯 했다. 지예에게 선생님의 말씀은 신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지예의 성격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무척 힘든 배려였다. 배려는 베푸는 자나 도움을 받는 자나 모두 행복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인 희생을 배려가 아니다. 어린 지예에게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어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써 보냈다. 아직 어린 지예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배려인 듯 하니 지예의 뜻을 받아졌으면 좋겠다고. 집사람도 전화로 상담을 했다.
결국 지예가 힘든 결정을 함으로써 일단락 되었지만 지예에 대한 배려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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