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쉬는 시간마냥 새벽부터 떠들썩하던 빗줄기는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에 기가 눌렸는지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침은 깨어날 줄 몰랐다. 내일까지 간간히 빗줄기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가 맞다면 이번 여행은 비와 함께 해야 될 듯 하다. 숨죽은 아침과는 달리 어젯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들뜬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다예는 1주일 전부터 먹을 거리들을 찾느라 부산을 떨었고, 지예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걱정을 하면서도 1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고, 민석이도 함께였다.
사실 전주는 몇 번 미루었던 여행지다. 이번처럼 전주만 딸랑 다녀올 계획이 아니라 공주나 아니면 변산반도와 묶어서 다녀올 생각이었다. 연수가 지난 주에 끝나면서 시간이 없었고, 아이들이 이번 여행을 '먹거리 여행'으로 테마를 정하면서 전주만 다녀오게 된 것이다.
8시쯤 출발하려고 했다. 그러면 12시쯤 도착해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 싶었다. 자고 있던 지예와 민석이를 깨워 준비했는데 의외로 30분 일찍 출발하였다. 빗길 운전이라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리니까 도착 시간은 비숫할 것 같다. 양산 물금과 김해에서 조금 정체된 것 말고 평일 고속도로는 순탄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따라 걱정했다가 안도했다가 방정을 떨면서 우리 차는 전주로 냅다 달렸다.
빗줄기가 잦아든 전주, 들어서자마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각자 먹고 싶은 곳으로 갔다. 다예와 나는 '조점례 피순대 국밥'을, 집사람과 지예, 민석은 '베테랑 칼국수'로. 먼저 전동성당 근처에 있다는 칼국수 팀을 내려 주고 우리는 풍납문 로타리에 차를 주차하였다. 그런데 칼국수 팀을 내려준 곳이 전동성당과는 30여분 거리였던 모양이다. 분명히 성당이었는데, 그곳이 전동성당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택시타고 가라고 일러주고 우리는 피순대 국밥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생각보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리 친절하지 않는 직원이 가져다 준 피순대 국밥은 정말 맛있었다. 아니 깊은 맛이었다. 단연 이제껏 먹어본 국밥 중 최고였다. 피순대 국밥의 깊은 맛은 이번 먹거리 여행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알큰한 예감을 주었다. 가격도 울산보다 1,000원 저렴한 6,000원이었다. 울산 물가는 정말 비싸다.
국밥을 먹고 칼국수 팀을 태우러 가려고 네비게이션 안내 따라 갔는데 '차없는 거리'라는 표지와 함께 입구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 길로는 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할 수 없이 차를 숙소 호텔을 주차하고 우리가 칼국수 집으로 가기로 했다. 만나보니 칼국수 집은 전주한옥마을 안에 있었고, 전동성당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국밥집과도 채 200미터도 안되는 곳이었다.
방금 점심을 먹었지만 본격적인 먹거리 여행은 쉴틈도 없이 바로 시작되었다. 이미 소문난 집 앞에는 긴 줄이 서 있어 맛집의 위용을 내뿜고 있었다. 제일 처음 맛 본 것은 '다우랑 만두'집의 철판새우만두였다. 한옥마을 내 한 곳 밖에 없는 탓에 기다리는 제일 길다. 피순대 국밥 팀을 기다리는 틈에 칼국수 팀이 미리 산 덕에 우리는 편하게 맛을 보았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씹히는 식감이 살아있는 노란 만두였다. 다들 맛있다고 하는데 식감외에는 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만두가 맛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맛에 둔한 내 혀의 문제였다. 군것질 거리로 집사람은 꽈배기, 아이들은 츄러스, 뻥스크림을 먹으며 오가는 사람 구경, 줄 서있는 사람 구경을 하고 다녔다. 한옥에는 관심없고 온통 먹으러 온 것 같았다. 여기가 한옥마을인지 맛집 거리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반은 맛집 앞에 줄 서있고, 반은 맛집 찾으러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 구경에 지칠 즈음 우리는 액서사리 가게에 들렀다.집사람은 귀걸이와 목걸이 그리고 옷, 아이들은 인형, 나는 팔찌를 하나 샀다. 족히 1시간은 있은 것 같다. 세 집이 나란히 있는 곳인데, 왔다갔다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만 빼고. 밖에서 앉아 기다리던 내가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해 질녘 까지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액서사리 가게를 겨우 빠져 나온 우리 부부는 쉴겸 아이스 맥주집으로, 아이들은 구경을 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지친 탓인지 아이들은 금방 돌아왔다. 액서사리 가게에서 본 부엉이 인형과 마녀 인형이야기를 하다 어느 것이 이쁜지 확인한다고 아이들은 몇 번 왔다갔다를 하는 동안 맥주를 다 마신 우리는 저녁 메뉴인 비빔밥을 먹으러 갔다. 종로회관으로 갔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어 발길을 돌려 풍남정에서 먹었다. 참기름 맛이 조금 강한 것 빼고는 특별한 맛은 없었다. 밑반찬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울산의 함양집 맛이 더 나은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지예와 민석이는 숙소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한옥마을의 밤을 구경하러 다녔다. 낮에 미처 보지 못한 곳들을 구경하였다. 낮과는 다른 모습에 한옥마을의 정취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둠 사이를 비집고 내리는 빗줄기를 한옥마을의 정취를 더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은은한 불빛과 향기로 이끌려 들어간 캔들 가게에서 다예는 생일 선물로 라벤다 양초를 엄마에게 사 주었다. 아직 다리가 아픈 나는 숙소로 돌아오고 둘은 계속 한옥마을의 밤길을 걸었다. 지예의 부탁으로 간식거리를 사 가지고 돌아온 둘은 자고 있는 지예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넷이 모여 술도 아닌 모주와 함께 간식거리를 먹고 긴 하루를 마무리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어김없이 5시에 일어났다. 나만. 아침 일찍 구경을 가자던 다예는 일어나지 않고 집사람만 겨우 일어났다. 따뜻한 물 목욕으로 어제의 피로를 씻어내며 아침을 기다렸다. 막 깬 다예한테 씻고 나오라 이르고 우리 부부는 한옥마을의 아침 구경을 나섰다. 어젯 밤의 반대쪽으로 향한 우리는 여기가 먹거리 장터가 아니라 한옥마을임을 새삼 깨달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아이들을 깨우러 숙소에 갔다가 막 나오는 다예를 만났다. 구경하다 콩나물 국밥집인 '삼백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제 피곤에 곤한 잠에 빠진 지예와 민석이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겨우 깨워 씻기고 짐 정리하는데 다예가 빨리 삼백집으로 오란다. 줄 서 있다고. 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안되면 자리 양보하라고 문자를 보내고 삼백집에 도착하니 다예가 없다. 기다리다 짜증이 나서 떠나 버렸단다. 지은 죄가 있는 우리 넷이 대신 줄을 서기로 하고 다예는 나머지 아침 여행을 다녔다. 40여분을 기다린 끝에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역시. 기다릴만한 곳이었다. 깊은 맛. 고추만두도 맛있었다. 아침을 먹고 초코파이를 사기 위해 풍년제과로 갔다. 긴 줄이 만만치 않았다. 두 팀으로 나눠 다른 풍년제과를 찾기로 했다. 경기전 앞 풍년제과 줄이 조금 짧았다. 그런데 다예가 원하는 빵이 하나 없었다. 5분 거리에 있다는 본점까지 걸어가 결국 붓세빵 2개를 샀다. 빵 하나를 사기 위해, 그것도 2,000원짜리 빵 하나를 사기 위해 본점까지 찾아가는 그 집념. 아! 아빠는 피곤하다.
빵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한테 전화를 하니 민석이하고 원카드를 하고 있단다. 더 구경할 것이 없다고. 전화를 끊고 최명희 문학관을 둘러보기 위해 다예, 지예와 헤어졌다. 현판의 힘찬 글귀와 담벼락 돌에 그려진 꽃그림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작다기보다는 아담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문학관 내부는 여느 문학관과 비슷하였다. 다만 최명희의 친필 글씨 모양이 내 글씨체와 비슷하여 정겨웠다. 최명희 문학관 바로 옆에 있는 부채박물관까지 둘러보았다.
나머지 둘도 더 먹을 것도 없고 구경할 것도 없다기에 우리는 진안 마이산으로 출발했다. 전주를 떠나 소양을 지날 때 민석이가 오줌이 마렵다해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근데 이럴 수가. 민석이가 도로를 등지고 있어야 하는데 마주보고 있었다. 도로를 향해 오줌을 누고 있었다. 맙소사!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국 나머지 여행내내 민석이는 놀림거리가 되었다.
마이산을 생각만큼 웅장하지도 않았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머지 넷은 좋다고 난리다. 계속 사진을 찍어 달란다. 산 풍경이 이국적인 것 말고는 별로. 그닥. 좋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오자고 한 곳이니. 내려오는 길에 풀빵을 샀는데 맛이 영, 별로였다. 오리 배를 타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울산으로 직행했다. 진영 휴게소에 잠깐 들린 것을 빼고는.
이번 여행에서 건진 것은 한옥마을의 간판들이었다. 참 이쁜 것들이 많았다. 한옥보다 오히려 멋진 간판들이 더 전주다웠다. 사진기 속에는 간판 사진들만 가득했다. 다들 참 좋은 여행이었다 말한다. 누구에게는 맛난 여행, 누구에게는 이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