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고난의 행군

당찬 2011. 2. 21. 17:51

그날의 등산은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몇번 벼르다 행한 등산이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둘째의 다짐은 우리에게 포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예는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빠지고 지예, 민석이를 데리고 우리는 문수산으로 향했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이라 바람은 여전히 찼고 몸은 굳어 있었습니다. 산은 덤벼서는 안된다며 날뛰는 아이들을 달래며 초반부터 페이스를 조절하며 천천히 산을 올랐습니다. 우리는 1차 베이스캠프에서 과자와 음료수로 기운을 보충하였습니다. 민석이가 초반과는 달리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지점 안내판에서 지금껏 우리가 오른 산이 문수산이 아니라 영축산이라는 사실을 새로 알았습니다. 우리는 문수산 가는 길을 문수산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깔닥고개 밑에서 준비한 컵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쓰레기 하나,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가져간 것 고스란이 챙겨서 문수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등산로 가에 밧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험하다는 것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녹지 않은 눈얼음과 녹은 눈으로 인한 진흙탕은 우리의 등반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칠백미터 거리를 그렇게 올라야 했습니다. 옷은 이미 챙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주위 등산객들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며 지예와 민석으로 한 발 한 발 올랐습니다. '거의 다 왔다'는 말을 백 번 넘게 해 가며 우리는 겨우 문수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본 울산은 엷은 안개와 싸여 희미했습니다. 천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두 아이에게 사 먹이고 우리는 문수사 쪽 길로 내려왔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깔닥고개 길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르는 동안에도 내려갈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포장된 길을 조금 내려가니 문수사로 접어드는 샛길이 나왔습니다. 그 길의 경사도 만만치 않았지만 미끄럽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문수사에서 물 한 모금 하고 다시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지예는 이 때부터 통증을 호소했고 민석이는 다리 힘이 풀려 넘어지곤 하였습니다. 갈 길은 멀고 아이들은 힘이 빠지고 슬슬 걱정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깔딱 고개로 내려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참을 내려간 우리는 음식점에서 쉬기로 하였으나 문을 닫은 탓에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아이는 쉬지 말고 빨리 가자고 말했습니다. 거의 율리 끝자락에 도착했을 즈음 그러니까 집사람이 냉이 한 봉지를 사 들고 몇 걸음 뗀 후 우리는 택시를 탈 수 있었습니다. 친철한 택시 기사 분은 우리를 신복초등학교 뒷편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정확한 거리는 알 수 없지만 어른인 내 다리가 이렇게 아픈데 두 아이는 오죽 하겠습니까? 우리들의 고난의 행군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다시는 오르지 않겠다는 지예의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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